신화템은 정말 문제였을까?
신화템, 사라졌지만 여전한 논쟁
리그 오브 레전드 아이템에 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크게 보면 신화템 관련인데, 신화템은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전설급 아이템보다 더 대단한 아이템 컨셉으로 나온 것이다. 시즌 11에 도입되어 비판을 받다가 시즌 14, 2024년도에 사라졌다.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신화템 때문에 망한 게 얼마냐”는 등의 소리를 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신화템 때문에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난 적이 별로 없어서 오히려 신화템이 사라질 때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신화템을 다시 떠올린 이유
갑자기 신화템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 이유는 얼마 전 전설급 아이템인 몰락한 왕의 검과 크라켄 학살자가 차례대로 버프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에는 나오기 힘들었던 코그모, 베인 같은 평타 기반 원딜들도 다시 픽이 될 수 있었고, 그전에 무조건 나보리 신속검을 가서 치명타 트리를 가던 챔피언들도 정말 치명타가 필요한 챔피언이 아니라면 크라켄 학살자를 사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그런데 이 상황을 보니 크라켄 학살자를 가는 챔피언은 온힛 데미지를 주기 때문에 몰락한 왕의 검도 적당히 잘 어울린다. 둘 다 1코어로 가기 좋은 아이템이라 약간 애매할 뿐이다. 아무튼 원딜이 아이템을 고를 때, 솔직히 말해 나보리 신속검, 크라켄 학살자, 몰락한 왕의 검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고르게 되고 여기서 딱히 벗어날 이유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요우무의 유령검 같은 특이 케이스는 제외한다). 이것은 신화템 시절 원딜이 갈 만한 아이템을 셋 중 하나로 제한하던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비판 1: 강제되는 빌드 경로
신화템이 안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를 찾아보니, 첫 번째로 챔피언들이 한 판당 하나의 신화 아이템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정답 아이템’을 강제해 다양한 빌드를 막는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몰락과 크라켄이 버프되기 전까지 원딜은 나보리 신속검만 사용했다. 심지어 나보리 신속검은 이전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라이엇 게임즈가 자신들이 만든 ‘세 가지 스탯 중 두 가지만 갖는다’는 규칙까지 어겨가며 억지로 버프해 준 아이템이다. 다시 말해, 지금도 정해진 아이템만 가는 상황은 똑같다.
비판 2: 밸런스 문제
두 번째로는 밸런스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한 신화템이 강하면 그 아이템을 가는 모든 챔피언이 강해지고, 어떤 아이템이 나쁘면 그 아이템을 가는 챔피언들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밸런스 패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신화템이 약하면 상향하고, 특정 챔피언만 약하면 그 챔피언을 상향하면 된다. 이는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는 밸런스 조정이며, 신화템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비판 3: 역할군 정체성 약화
마지막으로 역할군끼리의 정체성이 약화된다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의견도 있었다. 예를 들어 전사는 한 번에 죽지 않으면서 적당한 피해를 줘야 하는데, 선혈포식자 같은 아이템 때문에 모두가 올라프처럼 변해버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또한 암살자는 적을 암살한 뒤 위험에 처하는 리스크가 있어야 하는데, 드락사르의 황혼검으로 인해 ‘노 리스크 하이 리턴’의 상황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것이 신화템 시스템 자체의 문제일까? 특정 신화템의 능력을 과하게 만들어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한다. 신화템 체제는 유지하되, 게임 밸런스를 해치고 경험을 저해하는 아이템들을 수정하거나 삭제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진짜 문제점은 따로 있다: 빌드 고착화와 통계 사이트
‘빌드의 고착화’, 즉 모든 챔피언이 정해진 아이템만 가는 것이 문제라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는 신화템의 문제가 아니라 OP.GG, lol.ps 같은 통계 사이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이트가 등장하기 전, OP.GG와 FOW.KR이 데이터를 제공하던 시절에도 지금처럼 빌드가 고착화되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정보가 체계적이지 않아 유저들이 프로 선수의 빌드를 따라 하는 정도였지, 지금처럼 데이터에 기반해 ‘가장 좋은 아이템’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통계 서비스가 발전하면서 데이터에 근거한 최적의 빌드가 정착되기 시작한 것을 신화템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다양한 빌드를 시험하는 게임이 되는 것도, 다른 사람이 연구한 내용을 토대로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는 게임이 되는 것도 모두 좋다. 하지만 둘 중 하나의 가치만 선택하며 다른 쪽을 비난하는 것은 내로남불이다.
결론: 이름만 사라진 신화템
만약 내가 게임을 디자인한다면 신화템 시스템을 다시 도입할 것이다. 신화템이라고 해서 특별하거나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른 아이템보다 골드당 효율이 약간 더 좋거나, 특정 게임 스타일을 강화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많은 비판을 받았기에 신화템이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신화템’이라는 이름표만 떼어냈을 뿐, 빌드의 고착화 문제는 여전하다. 유저들은 여전히 데이터에 기반해 가장 효율적인 ‘정답’ 아이템을 찾고 있으며, 이는 신화템 시스템 자체보다 통계 사이트와 최적화 공략이 게임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진정한 빌드의 다양성은 단순히 아이템 시스템을 바꾸는 것만으로 이룰 수 없다. 어쩌면 게임을 즐기는 방식에 대한 커뮤니티의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