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송의 소원 수락
들어가며
드디어 실크송을 맛보고 돌아왔다. 아직 초반부를 플레이하며 게임을 알아가는 단계지만, 워낙 오랜 시간 기다려온 대작인 만큼 생각할 거리와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낀다. 이 대단한 게임을 한 번에 리뷰하려는 욕심 대신, 플레이하며 발견하는 자잘한 생각들을 그때그때 기록해두려 한다.
퀘스트인가, 소원인가?
이번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실크송의 ‘소원’ 시스템이다. 다른 게임의 ‘퀘스트’와 비슷한 이 시스템은, NPC의 소원을 듣고 수락할지 거절할지 선택지를 제공한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소원의 개수 제한이 없고, 소원을 진행하는 데 어떠한 페널티도 없다. 즉,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마주치는 모든 소원을 수락하는 것이 이득이다.
불필요한 선택지를 주는 이유
일반적인 UX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답이 정해진 질문을 던져 사용자의 행동을 한 단계 추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크송은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실크송은 메트로배니아 장르의 게임이지만, 플레이어가 주인공 ‘호넷’에게 감정을 이입하여 플레이하는 롤플레잉 게임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작은 선택지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역할 수행을 통한 몰입
게임 속 세계관에 몰입한 상태에서 NPC가 우리에게 ‘소원’을 제시할 때, 그것을 ‘수락’하는 아주 간단한 행위는 플레이어 스스로가 호넷이 되어 “이 NPC의 소원을 들어줄까?” 하고 결정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 당연한 선택의 과정 자체가 역할 수행(Role-Playing)에 깊이를 더하고 몰입을 돕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퀘스트’가 아닌 ‘소원’인 이유
이 시스템의 이름이 ‘퀘스트’나 ‘부탁’이 아닌 ‘소원’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지금까지 느낀 바로, 실크송의 주인공 호넷은 강력한 전사이자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그려진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작은 벌레 NPC들은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을 호넷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때 게임은 호넷이 그들의 일을 처리해주는 것을 ‘퀘스트’나 ‘부탁’으로 명명하지 않고 ‘소원’이라고 표현했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단순히 심부름을 하는 해결사가 아니라, 작은 존재들의 간절한 소원을 이뤄줄 수 있는 강력하고 자비로운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작은 명칭의 차이가 플레이어의 경험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