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PM을 향한 첫걸음, 고객의 소리 듣기

글로벌 PM의 꿈을 키우며,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PM의 핵심 역량 중 하나는 ‘고객의 소리(VoC, Voice of Customer)’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품을 개선하며, 내외부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입장에서 실제 고객 데이터를 접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간접적으로나마 유저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해외 리그 오브 레전드 커뮤니티인 레딧(Reddit)으로 향했다. 과거 인벤의 ‘라이엇에 바란다’ 게시판처럼, 유저들의 생생한 의견이 오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필터링 없이 눈에 띄는 토론 글들을 읽으며 예비 PM으로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저 피드백 1: “왜 챔피언 ‘멜’의 사거리는 550인가요?”

첫 번째 이야기는 ‘멜’이라는 챔피언의 기본 공격 사거리(550)가 플레이 경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의견이었다. 제라스처럼 스킬 사거리가 긴 챔피언도 마나 회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짧은 사거리(525)로 기본 공격을 해야 하는 리스크가 있는데, 멜은 긴 사거리의 스킬셋과 더불어 기본 공격 사거리까지 길어 상대하는 입장에서 무력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 가는 지적이다. 모든 유저의 불만을 다 들어줄 순 없지만, ‘멜의 사거리가 반드시 550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실제로 기본 공격이 스킬셋의 핵심인 아지르, 케일 등은 사거리가 525이며, 애니, 브랜드처럼 기본 공격의 중요도가 낮은 메이지들이 550의 사거리를 갖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챔피언의 기본 공격 사거리를 몇 개의 표준 규격으로 통일하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어 125, 175, 300, 450, 525, 550, 575 등 7개 내외의 사거리 티어를 정하고, 각 티어에 맞는 챔피언의 역할군과 컨셉을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밸런스 예측을 용이하게 하고, 위와 같은 논란을 미연에 방지하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유저 피드백 2: “불공평한 밴픽, ‘동시 픽’은 어떨까요?”

두 번째는 밴픽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었다. 자신이 고른 챔피언이 상대의 카운터 픽에 무력해지는 ‘운적인 요소’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양 팀의 같은 포지션이 동시에 픽을 하고, 만약 같은 챔피언이 나오면 해당 챔피언을 밴 처리 후 다시 고르는 방식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는 ‘밴픽도 게임의 일부’라는 중요한 전제를 간과한 주장이다. 상대의 픽을 보고 조합을 구상하고, 카운터 플레이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리그 오브 레전드의 핵심 전략 중 하나다. 만약 이 제안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전략의 깊이가 얕아질 뿐만 아니라, 과거의 ‘비공개 선택’ 방식과 다를 바 없게 된다.

물론 유저가 느끼는 불만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다. 그렇다면 이런 대안은 어떨까? 포지션 선택 단계에서 ‘선픽 선호’와 ‘후픽 선호’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MMR(혹은 랭크 점수)이 높은 유저에게 우선권을 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우리 팀 5명 모두 ‘후픽 선호’를 골랐다면, MMR이 가장 낮은 사람이 1픽을 맡게 되는 식이다. 이는 과거처럼 포지션을 빼앗기는 일 없이, 유저에게 선택권을 주면서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는 절충안이 될 수 있다.

유저 피드백 3: “칼바람 나락, ‘역할군 강제’로 밸런스를 맞추죠”

마지막은 칼바람 나락(ARAM)의 밸런스에 대한 이야기다. 상대는 탱커, 원딜, 서포터 조합인데 우리 팀은 암살자만 넷이 잡히는 등 극단적인 조합 불균형을 막기 위해, 매칭 시 ‘원거리 딜러, 근접, 서포터’ 등 역할군을 강제하자는 아이디어다.

조합 때문에 시작부터 패배를 직감하는 불쾌한 경험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제안은 ‘All Random All Mid’라는 ARAM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흔드는 해결책이다. 무작위성이 주는 예측 불가능한 재미가 ARAM의 핵심인데, 여기에 인위적인 제약을 가하면 본질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라이엇 역시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며, 이미 좋은 해결책을 내놓았다. 바로 ‘주사위’와 ‘벤치’ 시스템이다. 여러 개의 챔피언 선택지를 제공하고 팀원과 교환할 수 있게 함으로써, 조합의 최악은 피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었다. 이는 랜덤성을 보존하면서도 유저에게 전략적 선택의 여지를 주는 영리한 방식이다. ARAM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완화하는, 현재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이라 생각한다.

결론: 고객의 목소리에서 길을 찾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레딧의 토론들을 살펴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유저들의 제안이 때로는 순진하거나 단편적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분명 ‘왜 불편함을 느끼는가’에 대한 핵심적인 이유가 담겨있다.

훌륭한 PM은 유저의 제안(What)을 그대로 받아 적는 사람이 아니라, 그 제안의 기저에 깔린 의도와 불편함(Why)을 파악하고 더 나은 해결책(How)을 제시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번 경험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소중한 연습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