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인은 MBTI에 열광하는가?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이제는 자기소개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이 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혈액형이나 별자리점이 차지했던 자리를, 이제는 16가지의 알파벳 조합이 완벽하게 대체했다. 유독 한국 사회가 이토록 MBTI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그 배경에 깔린 우리 사회의 독특한 욕망이 보였다.
1. 자신을 증명하는 ‘명패’의 문화
과거부터 한국 사회는 자신을 표현하고 증명할 ‘명패(名牌)’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어느 대학에 다니는지, 어떤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지, 어느 동네에 사는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명패들은 개인의 노력과 성취를 증명하는 동시에, 그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지표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전통적인 명패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바로 획득하기 어렵고, 그 안에는 분명한 서열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좋은 대학이나 좋은 직장이라는 명패는 모두가 가질 수 없기에, 누군가에게는 자부심이 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외감이나 박탈감을 주기도 했다.
2. 새로운 명패, MBTI의 등장
이 지점에서 MBTI는 아주 영리한 대안으로 등장한다. MBTI는 성취의 결과물이 아니라, 개인의 타고난 기질과 성향을 설명하는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명패’다. 가장 큰 특징은 이 명패가 비교적 ‘수평적’이라는 점이다.
‘외향적인 E’가 ‘내향적인 I’보다 우월하다거나, ‘감성적인 F’가 ‘사고적인 T’보다 열등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좋고 나쁨의 개념이 모호하기에 누구나 부담 없이 자신의 명패를 드러낼 수 있다. 특히 아직 뚜렷한 사회적 성취를 이루지 못한 젊은 세대, 인터넷 커뮤니티의 주 사용층인 학생들에게 MBTI는 자신의 정체성을 쉽고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가 된 것이다.
3. 관계를 위한 ‘사용 설명서’
MBTI의 열풍을 단순히 ‘명패 문화’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또 다른 기능이 숨어있다. 바로 ‘관계의 사용 설명서’ 역할이다.
빠르게 변화하고 수많은 사람과 얕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타인을 깊이 이해할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다. 이때 MBTI는 일종의 치트키처럼 작동한다. “아, 저 사람은 T라서 저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구나”, “F인 나에게 T인 친구의 말은 상처가 될 수 있겠구나” 와 같이, 상대방의 행동 패턴을 빠르게 파악하고 예측하게 해준다.
물론 이것이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나 편견으로 이어질 위험도 크다. 하지만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줄이고, 갈등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으로서 MBTI는 매우 매력적인 도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맺으며
결국 한국 사회의 MBTI 열풍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만 서열화되기는 싫은 욕망, 그리고 타인과 쉽고 효율적으로 관계 맺고 싶은 필요가 맞물려 만들어 낸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라 볼 수 있다.
MBTI라는 네 글자의 알파벳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나를 이해받고 타인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간절한 마음만큼은 한번쯤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