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보고서]공평과 평등
나의 생각
이 보고서를 읽은 뒤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전적 능력, 금수저 등 부모의 능력, 심지어 태어난 곳의 지리적 위치마저도 모두가 똑같을 수 없는 세상에서 엄격한 평등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고 결과의 평등을 위해서 사회가 움직인다면 어떻게 될까? 모두가 똑같은 결과를 받게 된다면 열심히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사회는 발전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공평이다.
얼마 전 쇼츠를 스크롤하다 한 영화 클립을 보았다. 인턴 면접인 듯, 면접관 앞에 여러 명의 지원자들이 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마지막 지원자가 문을 통과하기 직전, 면접관은 시간이 다 됐다며 문을 닫았다. 그 지원자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는데, 다른 지원자들과 동시에 도착했음에도 휠체어 통과를 도와주는 버튼을 누르느라 제시간에 들어가지 못했다. 해당 영상은 이 면접관이 얼마나 규칙과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면접관의 비서, 그 영화를 보는 우리, 그리고 댓글창의 많은 사람들은 ‘바로 앞에 있었는데 그냥 통과시켜 주면 안 되나?’, ‘휠체어를 타서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한 부당함을 조금은 인정해 줄 수 없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을 주는 것이 평등이라면, 공평은 똑같은 과업을 수행하더라도 휠체어를 타서 2~3초 더 걸리는 것을 감안해 그만큼 시간을 더 주는 것일 테다.
나는 아직 사회적 위치는커녕 작은 집단의 대표도 아니다. 중요 결정에서 나의 철학을 펼칠 수 없으며, 이 세상에 평등보다 공평이 더 필요하다고 세상을 바꿀 힘이 아직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보다는,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다시 다져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위의 영상 예시를 보고 ‘아, 저게 평등이지. 휠체어 탔다고 특혜를 주면 그건 평등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쿨찐’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 나 또한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무조건 특혜를 주거나 다른 사람보다 우대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한 분야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다른 분야에서 잠재력을 뽐낼 기회마저 막는 것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는 평등은커녕 공정도 잘 지켜지지 않다가, 드디어 조금씩 나아지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 자식이나 손주들이 경쟁하는 시대가 오면, 한국이 더욱 발전해서 공평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공평과 평등: 철학적 기원부터 현대 사회 정책의 딜레마까지
Part I: 기본 개념 정립 - 담론의 토대 구축
현대 사회의 정의(Justice)에 관한 논의는 ‘공평(Equity)’과 ‘평등(Equality)’이라는 두 가지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두 개념은 종종 혼용되거나 동일시되지만, 그 철학적 기반과 정책적 함의는 근본적으로 상이하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서는 이들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고, 각각의 원칙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본 보고서의 첫 번째 파트에서는 평등, 공평, 그리고 이들을 포괄하는 더 넓은 개념인 공정(Fairness/Justice)의 의미를 정립하고, 이들 간의 관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후속 논의의 견고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1.1 평등 (Equality) - 동일함의 원칙
평등(Equality)은 가장 직관적인 형태의 정의 원칙으로, 모든 개인을 동일하게 대우하고 동일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배경, 능력, 필요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과정이나 투입의 형식적 동일성을 강조하는 원칙이다. 국어사전은 평등을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으로 정의하며 1, 이는 분배의 맥락에서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똑같은 질과 양으로 나눠줘야 한다”는 개념으로 구체화된다.3 이 원칙은 근대 민주주의 사회의 초석을 이루었으나, 그 적용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 하위 개념으로 분화되며 복잡한 양상을 띤다.
기회의 평등 (Equality of Opportunity)
기회의 평등은 사회적 경쟁의 ‘출발선’을 동일하게 맞추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동등하게 보장받아야 한다는 원칙이다.4 예를 들어, 모든 아동에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의무교육 제도는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려는 대표적인 정책이다. 이 개념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규칙 아래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결과의 차이는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른 정당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기회의 평등은 종종 형식적인 수준에 머무른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모든 이에게 동일한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개인이 처한 사회경제적 배경, 가정환경, 선천적 조건의 차이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출발선은 같을지라도 경주에 참여하는 선수들의 신체 조건이나 훈련 환경이 다르다면, 그 경주는 결코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기회의 평등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5
결과의 평등 (Equality of Outcome)
결과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쟁의 ‘결승선’을 동일하게 맞추려는 급진적인 원칙이다. 이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최종적으로 유사한 수준의 부와 복지를 누려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재분배를 요구한다.4 예를 들어, 특정 계층에게 평균보다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하여 최종적인 결과의 격차를 줄이려는 정책이 이에 해당한다.7 이러한 접근은 사회적 약자나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잠정적 조치로서 정당성을 얻기도 한다.8
자유로운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과의 평등은 개인의 자유와 노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9, 심화되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오늘날 결과의 불평등이 심화되면, 부유한 부모는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다음 세대의 기회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6
이처럼 ‘평등’이라는 단일한 개념 속에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이라는, 때로는 서로 긴장 관계에 있는 두 가지 하위 원칙이 내재되어 있다. 기회의 평등이 고전적 자유주의나 시장경제 이념과 친화적이라면, 결과의 평등은 사회민주주의나 사회주의 이념에 더 가깝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평등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단순히 정책적 선택의 문제를 넘어,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책임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의 대립을 반영하는 이념적 전쟁의 성격을 띤다. ‘평등’이라는 용어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전장인 셈이다.
1.2 공평 (Equity) - 공정성과 비례의 원칙
평등이 ‘동일함(sameness)’을 지향한다면, 공평(Equity)은 ‘공정성(fairness)’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10 공평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상이한 상황과 필요를 고려하여 차등적인 대우를 통해 실질적으로 공정한 결과를 도출하려는 원칙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공평을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름”으로 정의하며 1, 이는 분배의 맥락에서 “기여에 비례하는 분배나 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3 공평의 원칙은 모든 상황에 획일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맥락을 고려하여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공평의 원칙은 크게 수평적 공평과 수직적 공평으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다.
수평적 공평 (Horizontal Equity)
수평적 공평은 “같은 것은 같게” 다루는 원칙으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조건에 있는 개인들은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평등의 개념과 매우 유사하게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라는 전제를 통해 적용 대상을 한정한다는 점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18세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1표의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수평적 공평의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모든 세대주에게 동일한 금액의 주민세를 부과하는 것 역시 이 원칙에 기반한다.11 수평적 공평은 형식적 평등의 기반이 되며, 자의적인 차별을 방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수직적 공평 (Vertical Equity)
수직적 공평은 “다른 것은 다르게” 다루는 원칙으로, 공평의 개념을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능력이나 필요 등 정당한 근거가 있는 차이를 가진 개인들은 그 차이에 비례하여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수직적 공평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누진세(progressive tax) 제도다.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여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조세 부담 능력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여 차등적인 대우를 하는 것이다.11 마찬가지로, 성적순으로 신입사원을 선발하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재산세를 납부하는 것 역시 개인의 능력이나 소유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는 수직적 공평의 사례로 볼 수 있다.11
수직적 공평의 원칙은 본질적으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재분배를 정당화한다. 이 원칙을 정책으로 구현하기 위해 국가는 먼저 개인들의 소득, 재산, 능력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러한 차이가 차등적 대우를 정당화하는 도덕적으로 유의미한 기준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러한 판단과 개입의 과정은 국가가 단순히 중립적인 심판자의 역할을 넘어, 사회적·경제적 자원의 분배를 적극적으로 조율하여 ‘공정한’ 상태를 만들어나가는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이는 모든 개인에게 동일한 세율(flat tax)을 적용하는 수평적 공평의 원칙을 옹호하는 자유지상주의적 최소국가론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따라서 한 사회가 공공 정책의 영역에서 수직적 공평의 원칙을 채택한다는 것은, 형식적 평등을 넘어 사회 구성원들이 정의롭다고 여기는 자원과 부담의 분배 상태를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인 사회·경제적 조정을 수행하겠다는 집단적 결정을 의미한다.
1.3 시각적 은유와 개념의 명확화
평등과 공평의 추상적인 개념적 차이는 시각적 은유를 통해 보다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예시는 키가 다른 세 사람이 담장 너머로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상황을 묘사한 그림이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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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Equality)의 상황: 세 사람 모두에게 똑같은 크기의 상자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가장 키가 큰 사람은 상자 없이도 경기를 볼 수 있었고, 중간 키의 사람은 상자 덕분에 경기를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가장 키가 작은 사람은 여전히 담장 너머를 볼 수 없다. 여기서 투입(상자 한 개)은 모두에게 동일했지만, 결과(경기 관람 가능 여부)는 불평등하게 나타난다. 이는 개인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지원이 실질적인 평등을 보장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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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Equity)의 상황: 세 사람의 각기 다른 필요에 맞춰 상자를 재분배한다. 가장 키가 큰 사람에게는 상자를 주지 않고, 중간 키의 사람에게는 하나, 가장 키가 작은 사람에게는 두 개의 상자를 준다. 그 결과, 투입(상자의 개수)은 불평등했지만, 세 사람 모두가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공정한 결과가 달성된다. 이는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실질적인 기회의 균등을 이룰 수 있음을 시사한다.12
이러한 시각적 은유는 두 개념의 핵심적인 차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만, 현실의 복잡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한계 또한 명확하다. 이 은유는 현실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지점들을 의도적으로 가리고 있다. 첫째, 누가 상자를 분배할 권한을 가지는가? 그림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지전능한 분배자가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역할을 국가나 정부 기관이 수행하며, 이들의 결정은 정치적 압력, 비효율, 심지어 부패의 가능성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11
둘째, 우리가 함께 보고자 하는 ‘경기’는 과연 무엇인가? 이는 단순히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소득, 행복, 자아실현 등 다차원적인 삶의 목표를 의미하며, 무엇을 평등하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이 은유는 재산권의 문제를 완전히 무시한다. 만약 키가 가장 큰 사람이 그 상자를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들어 가져온 것이라면, 그것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는 행위가 과연 정당한가? 이는 재분배 정책에 대한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의 자유지상주의적 비판의 핵심이며, 단순한 그림 한 장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깊은 철학적 논쟁을 담고 있다.
한편, 한국어의 맥락에서 ‘공평’과 ‘평등’은 ‘공정(公正)’이라는 더 넓은 개념의 하위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국어사전은 ‘공정’을 ‘공평하고 올바름’으로 정의한다.1 즉, ‘공정’이라는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때로는 ‘평등’의 원칙에 따라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를 제공하고, 때로는 ‘공평’의 원칙에 따라 각자의 필요에 맞는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정 사회’를 향한 논의는 이 두 원칙을 대립적인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어떤 원칙을 우선적으로 적용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지혜를 요구한다.
표 1: 공평(Equity)과 평등(Equality)의 핵심 개념 비교
| 특징 (Feature) | 평등 (Equality) | 공평 (Equity) |
|---|---|---|
| 핵심 원칙 (Core Principle) | 동일성, 균일성 (Sameness, Uniformity) | 공정성, 비례성 (Fairness, Proportionality) |
| 목표 (Goal) | 동일한 투입 또는 기회 제공 (Provide same inputs or opportunities) | 공정한 결과 달성 (Achieve fair outcomes) |
| 분배 방식 (Approach to Distribution) |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분배 (Distribute identically to all) | 개인의 필요나 기여에 따라 차등 분배 (Distribute differentially based on need or contribution) |
| 초점 (Focus) | 과정의 형식적 동일함 (Formal sameness of process) | 결과의 실질적 공정함 (Substantive fairness of outcome) |
| 대표 철학 사상 (Key Philosophical Idea) | 형식적 평등, 기회의 균등 (Formal Equality, Equality of Opportunity) | 분배적 정의, 차등의 원칙 (Distributive Justice, Difference Principle) |
| 정책 예시 (Policy Example) | 1인 1표 투표권, 의무교육 (One-person-one-vote, Compulsory education) | 누진세, 사회적 약자 대상 복지 (Progressive tax, Welfare for the disadvantaged) |
Part II: 정의와 분배의 철학적 토대
현대의 공평과 평등에 관한 논쟁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수천 년에 걸친 철학적 사유의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특히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와 20세기 미국의 존 롤스는 분배적 정의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하며 현대 정치철학의 지형을 형성했다. 이들의 이론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복지, 조세, 차별 시정 정책의 논리적 근간을 제공한다. 따라서 현대 정책의 딜레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철학적 원류를 탐색하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2.1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배적 정의
정의론의 시초로 평가받는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정의를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와 ‘시정적 정의(corrective justice)’로 구분했다. 이 중 분배적 정의는 현대의 공평 및 평등 논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핵심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분배적 정의란 단순히 돈이나 재화와 같은 경제적 자원뿐만 아니라, 명예, 권력, 지위 등 공동체 내에서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을 구성원들에게 공정하게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13 그가 제시한 분배의 핵심 원리는 ‘기하학적 비례에 따른 평등’이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똑같은 몫을 주는 산술적 평등이 아니라, 각자의 가치(axia)에 비례하여 몫을 분배하는 비례적 평등을 의미한다.16 즉, “같은 가치를 지닌 사람은 같은 몫을, 다른 가치를 지닌 사람은 다른 몫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현대 공평(Equity) 개념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13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로운 분배가 최소한 네 개의 항, 즉 두 사람과 그들에게 분배될 두 개의 사물 사이의 관계(A:B=C:D)로 구성된다고 보았다.16 여기서 정의는 사람
A가 받는 몫 C와 사람 B가 받는 몫 D의 비율이 사람 A와 B의 가치의 비율과 동일할 때 성립한다.
그러나 여기서 결정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분배의 기준이 되는 ‘가치’는 무엇이며, 누가 그것을 결정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가치’의 기준이 공동체의 정치체제(politeia)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민주정에서는 모든 자유 시민이라는 신분이 가치의 기준이 되고, 과두정에서는 부(富)가, 귀족정에서는 탁월성(arete)이 그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16
이 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의 현대적 함의와 근본적인 딜레마가 드러난다. 그의 이론은 능력이나 기여에 따라 차등적인 보상을 하는 현대의 능력주의(meritocracy) 주장에 대한 고전적 정당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가치’의 기준이 보편적이거나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각 공동체의 정치적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가변적인 것임을 명확히 했다. 이는 현대 사회의 정의에 관한 논쟁이 본질적으로 어떤 ‘가치’를 우리 사회 분배의 핵심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투쟁임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대학 입시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학업 성취도(귀족정적 탁월성), 사회경제적 배경의 다양성(민주정적 평등), 또는 기부금 액수(과두정적 부) 중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기업이 임금을 결정할 때, 생산성(능력주의)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가, 아니면 부양가족의 수(필요)를 고려해야 하는가?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벌이는 ‘공정성’ 논쟁의 대부분은 분배의 비례 원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례의 기준이 되는 ‘가치’를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깊은 아리스토텔레스적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이 투쟁은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공동체인지를 결정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2.2 존 롤스의 공정으로서의 정의
20세기 후반, 존 롤스는 그의 기념비적 저작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정의 이론을 제시했다. 롤스의 이론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가 희생될 수 있다는 공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17, 동시에 타고난 능력이나 환경에 따른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단순한 능력주의에 맞서는 대안을 모색했다. 그의 핵심 목표는 실질적인 정의의 기준을 직접 제시하기보다, 사회의 기본 구조를 결정하는 원칙들이 합의되는 ‘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공정한 절차를 통해 도출된 결과는 그 내용과 무관하게 정의롭다는 ‘절차적 정의’가 그의 이론의 핵심이다.19
이러한 공정한 절차를 고안하기 위해 롤스는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라는 가상적 상황을 설정한다. 이 상황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다.19 무지의 베일 뒤에 있는 합의 당사자들은 인간 사회에 대한 일반적인 사실(정치, 경제, 심리학 등)은 알고 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특수한 정보, 즉 자신의 사회적 지위, 계급, 재산, 천부적 재능(지능, 외모, 건강 등), 가치관, 심지어 자신이 어떤 세대에 속하는지조차 전혀 알지 못한다.18 이 장치는 합의 과정에서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이기심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모두에게 공정한 원칙을 선택하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한다.
롤스는 이처럼 공정한 조건 하에 놓인 합리적 개인들이라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정의의 원칙에 만장일치로 합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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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원칙 (평등한 자유의 원칙): 각 개인은 다른 사람들의 유사한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기본적 자유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이는 사상, 양심, 언론, 집회, 선거의 자유 등 기본적인 시민적·정치적 자유를 최우선으로 보장하는 원칙이다. 이 자유는 오직 더 큰 자유를 위해서만 제한될 수 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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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원칙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원칙):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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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의 원칙 (Difference Principle): 그 불평등이 사회의 ‘최소 수혜자(least-advantaged members)’, 즉 가장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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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 (Fair Equality of Opportunity): 그 불평등의 원인이 되는 직위나 직책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 아래 개방되어야 한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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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롤스 이론의 혁명성이 드러난다. 그는 개인이 가진 천부적 재능이나 태어난 사회적 환경은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완전히 임의적이고 우연적인 ‘자연적 운(natural lottery)’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20 내가 뛰어난 재능을 갖고 태어난 것이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은 나의 노력이나 공과가 아니므로,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이익을 온전히 독점할 도덕적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우연적 자산의 분포는 사회 전체의 ‘공동 자산(common asset)’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은 사회 구성원, 특히 불운하게 태어난 사람들을 위해 재분배되는 것이 정의롭다고 본다.20
차등의 원칙은 바로 이 논리에 기반한다. 이는 불평등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급진적 평등주의와는 다르다. 롤스는 불평등이 최소 수혜자에게 이익이 되는 한 허용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뛰어난 능력을 가진 기업가에게 더 많은 소득을 허용하는 불평등은, 그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그의 소득에 부과된 높은 세금이 사회 복지 재원으로 사용되어 결국 사회 전체,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킨다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18
결론적으로 롤스의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적 ‘가치’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한다. 정의란 우연히 주어진 재능을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연적 운’의 영향을 완화하고 사회의 기본 구조가 모든 구성원에게 공정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의 철학적 정당성을 제공하는 가장 강력한 논리로 기능한다. 누진세, 사회 안전망, 공교육 강화 등은 단순히 시혜적인 자선 행위가 아니라, ‘무지의 베일’ 뒤에서 우리 모두가 합의했을 법한 정의의 원칙을 실현하는 제도로서 그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Part I에서 논의된 수직적 공평(Vertical Equity)의 개념을 철학적으로 완성시키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Part III: 현대 정책에서의 공평과 평등의 적용
추상적인 철학적 원칙들은 구체적인 사회 정책을 통해 현실 세계에 구현된다. 공평과 평등의 가치는 사회 복지, 조세, 고용,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책 설계의 기본 방향을 결정하며, 종종 치열한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본 파트에서는 대한민국 사회의 주요 정책 사례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공평과 평등의 원칙이 어떻게 정책으로 전환되고, 그 과정에서 어떤 딜레마와 갈등을 야기하는지를 탐구한다.
3.1 사회 복지 제도의 설계: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사회 복지 제도를 설계하는 데 있어 가장 근본적인 논쟁은 ‘누구에게 혜택을 줄 것인가’의 문제, 즉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의 대립이다. 이 논쟁은 평등과 공평의 원칙이 복지 정책 영역에서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보편주의(Universalism)는 평등의 원칙에 기반하여, 소득이나 자산 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22 국민연금, 건강보험, 의무교육 등이 대표적인 보편적 복지 제도에 해당한다.24 보편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모든 국민이 사회적 위험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하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동등하게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산 조사를 통해 수급자를 가려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낙인 효과(stigma)’를 방지하고, 중산층까지 복지 제도의 수혜자로 포함시킴으로써 제도에 대한 광범위한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여 사회 통합에 기여한다고 본다.22
반면, 선별주의(Selectivism)는 공평의 원칙에 입각하여, 한정된 재원을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계층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22 공공부조(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이 소득 및 자산 조사를 통해 저소득층을 선별하여 지원하는 제도가 이에 해당한다.24 선별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은 보편적 복지가 재정적으로 비효율적이며, 정작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혜택을 줄일 수 있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선별적 복지가 소득 재분배 효과가 더 높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22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두 원칙의 충돌은 2010년대 ‘무상급식’ 논쟁을 통해 폭발적으로 표출되었다.22 보편주의 진영은 무상급식을 ‘보편적 교육 복지’의 일환으로 모든 학생에게 차별 없이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선별주의 진영은 이를 ‘부자 아이들에게까지 공짜 밥을 주는’ 재정 낭비로 규정하고 저소득층 학생에게만 선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맞섰다. 최근에는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 제안이 등장하며 보편-선별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27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은 기존 선별적 복지 제도가 복잡한 행정 비용을 유발하고 ‘송파 세 모녀 사건’처럼 비극적인 복지 사각지대를 낳는다고 비판하며, 기본소득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주장한다.27 반면, 반대론자들은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 제도를 대체하며 오히려 저소득층의 소득 보장 효과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28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의 선택은 단순히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회를 지향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선별주의는 수급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과정에서 개인에게 모멸감을 줄 수 있으며, 사회를 ‘세금을 내는 사람’과 ‘혜택을 받는 사람’으로 분열시켜 복지 제도에 대한 장기적인 정치적 지지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22 반면, 보편주의는 중산층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제도의 이해 당사자가 되게 함으로써 공동체 의식과 연대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더 강력한 재분배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를 ‘재분배의 역설’이라 부르는데, 가장 가난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보다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프로그램이 더 큰 정치적 지지를 받아 결과적으로 더 많은 재분배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복지국가는 어느 한쪽의 원칙만을 고수하기보다는, 공공부조와 같은 선별적 제도를 통해 최저 생활을 보장하는 동시에, 사회보험이나 사회수당과 같은 보편적 제도를 통해 사회적 위험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조화로운 조합’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24
3.2 조세 제도를 통한 재분배
조세 제도는 국가가 공평의 원칙, 특히 수직적 공평을 실현하는 가장 강력하고 직접적인 수단이다. 그중에서도 누진세(progressive tax) 제도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 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핵심적인 기제로 작동한다.12
누진세란 소득이나 자산이 많을수록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과세 방식이다.31 이는 ‘능력에 따른 부담’ 원칙에 근거하여, 세금 부담 능력이 큰 고소득층이 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다. 대한민국 소득세법은 대표적인 누진세 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5년 기준 과세표준이 1,400만원 이하인 경우 6%의 세율이 적용되지만, 10억원을 초과하는 소득에 대해서는 최고 45%의 세율이 적용된다.31 이를 통해 거두어들인 세금은 국방, 치안과 같은 공공 서비스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 복지 비용으로 지출되어 부의 재분배 효과를 창출한다.30
조세 제도를 통한 소득 재분배 효과는 조세 부과 전의 소득 불평등도(예: 지니계수)와 조세 부과 후의 소득 불평등도의 차이를 통해 측정된다.32 누진세율 구조가 강할수록, 즉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실효세율 격차가 클수록 이론적으로 재분배 효과는 커진다.
그러나 누진세 제도의 효과는 단순히 명목 세율 구조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 한국의 소득세는 세율 구조 자체의 누진도는 높은 편이지만,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와 낮은 소득 파악률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소득 재분배 효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는 분석도 존재한다.33 또한, 과도한 누진세는 고소득층의 조세 저항을 유발하고, 근로 및 투자 의욕을 저해하여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33
더 나아가, 한 국가의 재분배 시스템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소득세뿐만 아니라 전체 ‘조세 및 이전지출’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소득세의 누진성이 높더라도 소비세(부가가치세 등)나 사회보험료의 역진성(소득이 낮을수록 소득 대비 부담률이 높아지는 현상)이 이를 상쇄할 수 있다. 또한, 걷은 세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재분배 효과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세수가 저소득층을 위한 현금 지원이나 사회 서비스 확충에 집중적으로 사용된다면 재분배 효과는 극대화되지만, 특정 산업 지원이나 대규모 토목 사업 등 혜택이 고소득층에게 편중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면 그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누진세는 공평의 가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정책 도구이지만, 그 효과는 조세 제도의 구체적인 설계와 국가 전체의 재정 운용 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진정한 조세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최고 세율 수치에 대한 논쟁을 넘어, 조세 제도의 투명성을 높이고, 세출 구조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며, 사회 전체의 재분배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설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3.3 적극적 우대조치와 역차별의 논쟁
공평의 원칙이 가장 첨예하고 논쟁적인 형태로 구현되는 영역이 바로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이다. 이는 여성, 장애인, 소수인종 등 역사적으로 차별받아 온 사회적 약자 집단에게 교육이나 고용의 기회에 있어 일정한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을 총칭한다. 이 정책의 근본적인 정당성은 형식적인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과거로부터 누적된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 있다.35 즉,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불리한 위치에 있는 선수에게 의도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공평의 논리에 기반한다.35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능력주의와 개인의 공정한 경쟁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역차별(reverse discrimination)’ 논란을 불러일으킨다.37
1. 성별 할당제 (양성평등채용목표제)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젠더 갈등의 전선 중 하나는 ‘여성 할당제’ 또는 ‘양성평등채용목표제’이다. 이는 공공부문 채용이나 기업의 임원 구성 등에서 특정 성별이 일정 비율에 미치지 못할 경우, 해당 성별의 후보자를 추가로 합격시키거나 임명하도록 하는 제도다.39 이 제도는 오랫동안 남성 중심적으로 형성된 조직 문화와 ‘유리천장’을 깨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로 도입되었다.40 2022년부터 시행된 개정 자본시장법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의 이사회를 특정 성별로만 구성하지 못하도록 규정하여, 사실상 여성 이사 할당제로 기능하고 있다.41
이러한 정책은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지만, 동시에 극심한 반발에 부딪혔다. 특히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20대 남성들을 중심으로, 할당제가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아닌 성별이라는 ‘특혜’를 통해 결과를 왜곡하며, 이는 공정한 경쟁의 원칙을 훼손하는 역차별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38 호주 퀸즐랜드주에서 여경 50% 채용 할당제 시행 후, 더 우수한 성적의 남성 지원자들이 탈락하는 사례가 발생하여 결국 제도가 폐지된 사건은 이러한 역차별 논란의 심각성을 보여준다.43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공무원 양성평등채용목표제의 경우 특정 성별의 합격자 비율이 30%에 미달할 때 적용되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남성 추가 합격자가 여성보다 더 많이 발생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44 이는 제도의 이름과 실제 효과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2. 장애인 의무고용제도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는 사회적 약자의 고용을 보장하기 위한 대표적인 공평 기반 정책이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라, 국가·지방자치단체와 50인 이상의 민간기업은 상시 근로자 총수의 일정 비율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할 의무를 진다.45 2024년 기준 의무고용률은 공공부문 3.8%, 민간부문 3.1%이다.46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업주에게는 ‘고용부담금’을 부과하고, 의무 이상으로 고용한 사업주에게는 ‘고용장려금’을 지급하여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자 한다.45
이 제도는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 통합을 촉진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48 그러나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부담금을 납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제도가 ‘고용 면죄부’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024년 통계에 따르면 정부부문(공무원)의 장애인 고용률은 2.85%로 의무고용률에 미치지 못하는 등, 제도의 완전한 정착까지는 여전히 과제가 남아있다.46
3.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교육 영역에서 공평의 원칙을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저소득층, 다문화, 탈북 학생 등 교육취약계층 학생이 밀집한 학교를 ‘사업학교’로 지정하여, 일반 학교보다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49 지원 대상 학생들에게는 학습 멘토링, 문화·체험 활동, 심리·정서 상담, 치과 치료 지원 등 학생 맞춤형 통합 서비스가 제공된다.51
이는 모든 학교에 동일한 자원을 배분하는 평등의 원칙에서 벗어나, 불리한 조건에 있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실질적인 교육 기회의 평등, 즉 ‘출발선의 평등’을 구현하려는 명백한 공평 기반 정책이다.50 이 사업은 학생들의 학교 적응력을 높이고 교육 격차를 완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적극적 우대조치를 둘러싼 논쟁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 정의관의 충돌을 보여준다. 한편에는 집단의 역사적 경험과 구조적 불평등을 중시하는 ‘집단 기반의 역사적 정의(공평)’ 관점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개인의 능력과 절차의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개인 기반의 절차적 정의(평등)’ 관점이 있다. 특히 입시와 취업에서 극도의 경쟁과 객관적 시험 점수를 유일하게 정당한 평가 기준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공평을 위한 모든 인위적 개입은 ‘불공정’과 ‘특혜’라는 이름으로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기 쉽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사태’에서 나타난 청년층의 분노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54 따라서 이러한 공평 기반 정책들이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차별이 실재하며 개인의 능력이 결코 사회적 진공상태에서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Part IV: 종합 및 미래 방향
지금까지 본 보고서는 공평과 평등의 기본 개념을 정립하고, 그 철학적 기원을 탐색했으며, 현대 사회 정책 속에서 이 두 가치가 어떻게 구현되고 충돌하는지를 다각적으로 분석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의들을 종합하여 두 가치의 상호작용과 현대 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진단하고, 더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정책적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4.1 공평과 평등의 상호작용과 현대적 과제
공평과 평등을 서로 배타적인 대립 관계로만 이해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 두 가치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의 두 축을 이룬다. 현대 사회의 핵심적인 과제는 이 두 가치 사이의 역동적인 긴장 관계를 이해하고, 그 균형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상호작용은 ‘결과의 불평등’이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나타난다. 영국의 경제학자 앤서니 앳킨슨(Anthony Atkinson)이 지적했듯이, 오늘 결과의 불평등에서 이득을 얻는 이들은 내일 그들의 자녀에게 불공평한 이익을 물려줄 수 있다.6 부유한 가정의 자녀는 더 나은 교육 환경, 폭넓은 사회적 네트워크, 안정적인 경제적 지원을 바탕으로 사회적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기회의 평등’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킨다. 결국, 어제의 결과가 오늘의 출발선을 결정하고, 오늘의 불평등한 경쟁이 내일의 더 큰 결과의 격차를 낳는 구조가 고착화된다. 따라서 내일의 기회의 평등을 진정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오늘 결과의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공평(equity) 기반의 정책적 개입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한국 사회를 휩쓴 ‘공정’ 담론의 이중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정’은 시대정신으로 부상하며 강력한 정치적 동력이 되었지만, 그 의미는 통일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2 한편에서는 ‘공정’을 능력과 시험 점수에 기반한 엄격한 절차적 평등으로 이해한다. 이 관점에서 여성 할당제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같은 공평 기반 정책은 ‘과정의 공정성’을 해치는 ‘특혜’이자 ‘불공정’으로 규정된다.54 다른 한편에서는 ‘공정’을 사회적 약자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실질적이고 결과적인 공평으로 이해한다. 이 관점에서는 구조적 차별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불공정’이다.11 이처럼 동일한 ‘공정’이라는 기치 아래 전혀 다른 정책적 처방이 주장되면서, 사회적 대화는 평행선을 달리고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4.2 정책적 제언과 전망
공평과 평등 사이의 복잡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단 하나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로운 사회는 어느 한쪽의 이념적 순수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치를 조화시키려는 끊임없는 노력 속에서 구현될 수 있다.
첫째, 보편주의(평등)와 선별주의(공평)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실용적인 복지 시스템의 조합이 필요하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예: 건강보험, 아동수당)는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복지 제도에 대한 광범위한 정치적 지지 기반을 구축하는 데 필수적이다. 동시에, 가장 취약한 계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선별적 복지(예: 공공부조,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는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불평등의 심화를 막는 안전망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25 이 두 가지 접근은 서로를 보완하며,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
둘째, 공평 기반 정책의 초점을 ‘결과의 인위적 조정’에서 ‘실질적 기회와 역량의 균등화’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채용 할당제와 같이 최종 결과에 직접 개입하는 정책은 능력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진 사회에서 지속적인 반발과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대신, 모든 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삶의 초기 단계에 자원을 집중하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고 정치적으로도 수용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이는 양질의 보육 및 유아 교육에 대한 보편적 접근 보장,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과 같은 교육 격차 해소 프로그램의 확대, 취약계층 청년의 사회 진출을 지원하는 맞춤형 정책 등을 포함한다. 이는 개인에게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역량(capability)’을 키워줌으로써, 결과의 정당성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결론적으로, 공평과 평등에 관한 논쟁은 한번 ‘해결’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민주 사회가 안고 가야 할 영구적이고 본질적인 긴장 관계다. 사회가 변화하고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이 등장함에 따라, 두 가치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은 끊임없이 재조정되어야 한다. 훌륭한 거버넌스의 목표는 이 긴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투명하고 민주적인 숙의 과정을 통해 그 긴장을 생산적으로 관리하며,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사회적 합의를 지속적으로 갱신해 나가는 것이다. 이 끊임없는 성찰과 조정의 과정이야말로 더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여정 그 자체일 것이다.